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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안쪽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과 함께 덧글 0 | 조회 1,081 | 2021-05-08 16:04:07
최동민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안쪽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과 함께 문틈으로 매캐한 연기가 새어나왔다.『그럼 여왕벌은 어디 있을까요?』『현재진행형입니까, 아니면 과거완료형입니까?』『운이 좋군, 초장부터.』『맞아, 그런데 바로 그 시간에 그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 줄 알아? 그 아가씨하고 마포 재개발지역에서 만나고 있었다는 거야, 글쎄.』교대로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이 소파에 앉은 것은 두 시 무렵이었다. 수건을 머리에 묶고 일본식 가운을 걸친 화숙의 모습은 낮의 분위기와 확 달랐다.은비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면서 옷장으로 가 봉투 꾸러미를 가져왔다.일권의 인사에 여자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영어로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그럼 신선한 맛이 없잖아요. 여기 케이크 하나 사 왔어요. 외로운 사람들끼리 성탄을 자축하기 위해.』『키가 없으니 호수 가운데로 나갈 수도 없고.』룸에 들어가자마자 노래경연이 벌어졌다. 연화는 동선의 맞은편에 앉아 시종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디스코텍을 가자, 포장마차를 가자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단란주점으로 선택한 건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일권이 내실 구석에 놓여 있던 라면박스를 들고 와 내려놓았다. 그 안에 든 원고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쌓아 놓고 나서 그가 말했다.일권은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강한 전류를 감지했다.『소문과 명실상부, 아오끼상의 저력에 정말 감탄했어요. 어쩜 그렇게 오사카를 손바닥 손금처럼 쥐고 계시는지.』『형, 이상한 생각 품고 있는 건 아니죠?』희수는 그런 그녀를 맨 먼저 만나고 싶었지만 은근히 겁이 나서 뒤로 미뤄 두었던 터였다.조용히 듣고 있던 화숙이 빙긋 웃더니 턱수염에게 건배를 청했다.남편이 출근한 후, 상미는 늘 하던 대로 무선호출기를 감청했다. 여전히 여자들의 목소리가 릴레이되었으나, 예전처럼 숨가쁠 정도로 아슬아슬한 약속 같은 내용은 드물었다.일권은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킨 뒤 돌려세웠다. 그리고 아까 실패했던 자세에 재도전하려는 듯 그녀
암실을 수라장으로 만들고 나서도 옷장이며 선반 등을 정신없이 뒤지는 걸로 봐서 그녀가 찾는 물건은 따로 있는 듯했다.술해 취하고 말에 취해 버린 세리는 일권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억울한 마음을 쏟아놓고 있었다.『치이, 농담 마시구요.』요트로 들어온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먹서먹한 얼굴로 마주 앉았다. 낯을 가릴 사이는 아니었지만 밀폐된 공간에 들어서자 괜히 어색해진 거였다.하지만 화숙이 침묵하자, 세리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그녀가 씽긋 미소를 지을라치면 그 속눈썹이 확실하게 기능을 발휘했다. 성희는 속눈썹 하나만으로 미소를 연출해 내는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천만에, 네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야. 그냥 잊고 마는 것 외에는.』『커피 고마웠어.』식탁을 치우고 두 사람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았다.『후후, 광이니까 면제죠?』일권은 몹시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다가 마지못해 결박을 풀어 주었다.새해를 밝힐 태양은 수평선 저쪽에서 오래 뜸을 들이며 숨바꼭질을 하다 두둥실 떠올랐다.『읽어! 한 장씩 차례차례 읽고, 나한테 돌려 줘.』희수는 너무 놀라 딸꾹질을 할 뻔했다.오늘이 월요일이라는 걸 생각하자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소름이 쫘악 끼쳤다.그들이 경쟁적으로 질문을 던졌다.희수는 뭐 그런 말까지 했느냐며 일권을 흘겨보았다. 일권은 그녀의 힐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작년 그 일을 회상했다.『너한테 할말이 있어.』『오, 제발!』그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아서스패스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태워 줬던 기억이 새로운 모양이었다.『!』『저 여자도 그의 오피스텔로 들어갈까요?』『그 여자가바로 나야.』그를 알고 난 뒤, 일권의 존재는 무의미했다. 뼈저리게 외로웠던 날들에 이따금씩 불태웠던 그 순진한 사내와의 열정은 소꼽장난에도 못 미치는 거였다.『내가 그녀를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해요?』상미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군요.』『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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